공인 영어 시험 성적이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작년에 수험료 할인 기회가 있어서 토익 시험을 보았다. 공인 영어 시험은 약 8년만이었다.
토익 점수가 영어 실력과 비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풀이 스킬에 의존해서 실제 실력에 비해 고득점을 받을 수도 있고, 점수만 높고 말하기가 전혀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평소 영어 실력이 좋다면 학원 도움 없이 어렵지 않게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1년 정도 일상에서 영어와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내 실력 변화가 궁금했다. 내 평소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서 문제 유형 확인을 위한 모의고사 1회만 풀어보고 토익 시험에 응시했다. (파트별 문제집이나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나는 30대 중반의 직장인이다. 직장에서는 그닥 영어를 쓸 일이 없다. 이제까지 해외여행을 제외하고 외국에 살아 본 적이 없다. 최근 10년간은 영어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1학년때 한 8개월, 3학년 때 2개월 정도 영어 학원에 다녔다. 과외는 받아본 적이 없다. 대학생 때(텝스 990이 만점이던 시절) 텝스 공부를 혼자서 해본 적이있다. 신입생 때 교내 모의 토익을 한 번, 8년전에 취업 서류 제출때문에 공인 토익 시험을 한 번 봤다.
다만, 시험을 보기 전에 1년 정도는 영어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영어를 시험 과목이나 자격증이 필요한 분야보다는 그저 언어로 생각하며 지냈다. 특별한 목표 설정 없이 그저 일상에서 영어를 많이 사용하려고 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려고 한다.
985점이 나왔다. 세상에, 나도 놀랐다.
Listening part는 사실 안 들리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다만 내가 영어 시험이란걸 본 지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 '와 요새는 보기가 이런식으로 나와?' 하다가 다음 문제를 못 듣고 당황해서 찍은게 몇 개 있었는데 거기서 틀린 것 같다. 아직 운전하며 우리말 라디오 방송 듣듯이 편하게 듣고 이해하는 실력은 아닌 것 같다.
Reading part는 다 풀었더니 15분 정도 남아서 추론 문제 다시 보고 OMR 마킹했다. (수능 공부 하던 시절에도 영어든 한국어든 논리 비약에 약해서 추론 문제 트라우마가 있다;)
점수를 받고 나서는 약간 복잡한 심경이었다. 내가 985점이라고? 토익 만점을 받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별 생각없이 가서 본 시험이 만점에서 단 5점이 부족할 뿐이라니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부족한 내가 이정도 점수면 부족한 영어 실력에 학원에서 배운 문제풀이 스킬만 더해서 990점을 받은 사람들도 많겠다 싶어 토익 점수에 대해 회의감도 느꼈다.
그래도 나는 평소 실력으로 시험을 본 것이므로 듣기와 읽기 실력이 실제로도 꽤 많이 좋아졌다고 판단하기로 했다.
토익 공부 따로 하지않고도 고득점을 받을 정도로 평소 영어 실력을 늘리는 방법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영어를 언어로 생각한다. 언어는 모름지기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고 자주 써야 한다. 단순히 눈으로 읽고 감을 잡는게 아니라 듣고 이해하고 쓰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일상속에서 영어를 자주 쓰고 네가지 분야에 골고루 밸런스를 맞추려고 한다.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네 분야에서 영어와 친숙해지려고 시도해본 방법들을 소개해보겠다. (토익이라는 단어에 끌려 오신 분들이 계실테니 적용해서 소개해보겠다.) 이중에는 마음먹고 책상에 앉아서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에너지를 덜들이고 놀면서 혹은 쉬면서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전자와 후자를 번갈아 하면 오랫동안 생활 속에서 밀접하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독해
일반적인 방법
잡지든 소설이든 만화책이든 아니면 관심있는 유튜버의 블로그든 영어로 되어있는 것을 자주 읽으면 된다.
일단 내용을 이해하려는 '관심이나 흥미'가 있는 텍스트를 읽으면 머릿속에서 어떻게든 글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과정이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관심있는 것을 자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토익 시험이 급해서 문제집 말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독해 문제를 풀고 채점한 뒤 다시 복습하며 문장을 차근차근 다시 읽고 해석해보면 된다. 해석을 잘 했다고 생각하고 대충 넘어가지말고 어려운 지문을 몇개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바꾸어 적어보자. 해석이 잘 안 되었던 문장들은 오답노트처럼 만들어두자. 나는 타임지를 읽을때 이 방법을 썼다.
차선책 (집중하기 힘들 때, 지치고 힘든 날)
정 공부할 의욕이 없다면 드라마를 보자. 미드로 듣기 능력을 기르고 발음을 교정했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웬만한 의지로 하기 힘들다. 사실은 미드로 독해능력을 기르기가 더 쉽다. 넷플릭스 켜고 좋아하는 미드 아무거나 틀어보자. 대신에 영자막으로 봐야한다.
적응이 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눈과 뇌가 자동으로 영단어를 향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해석을 100% 할 필요는 없다. 너무 이해가 안 되면 그 부분만 영자막과 한글자막을 번갈아 보든가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적당히 흡입력이 있는 미드라면 저절로 사전을 찾고 싶어질 것이다.
주제가 너무 어렵거나 비속어가 많거나 대사가 별로 없는 미드라면, 보다가 지치거나 건질게 없어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이 미드 저 미드 보면서 재미, 주제, 영자막 난이도를 적당히 고려해서 타협하면 된다.
2. 듣기
일반적인 방법
의지가 있다면 자료가 무엇이든 받아쓰고 답을 맞춰보면 된다. 자막이나 스크립트만 구할 수 있다면 좋아하는 해외 유튜버의 방송이어도 좋고, 미드 혹은 해외 애니메이션이어도 좋다.
당장 토익 950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토익 듣기 파트 문제를 주구장창 풀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들리던 부분은 계속 들리고 안 들리는 부분은 계속 안 들린다. 듣고 문제를 풀게 아니라, 그냥 전문을 딕테이션하고 스크립트와 맞춰보자. 문제 푸는 데는 일부 정보만 필요하지만, 딕테이션은 전부를 들을 수 있어야 가능하므로 진짜 실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발음을 접하려고 노력해본다. 우리 귀는 American English에 익숙해져 있는데, 사실 미국 사람들도 지역마다 억양이 다르고, 영국, 호주, 인도 발음도 다르다. 말할 때는 미국식 영어를 지향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 영어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소용이 없다.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을 남 발음 탓할 수 없다. 다양한 국적의 발음을 들어보면 미국식 영어 자체도 더 잘 들린다.
차선책 (집중하기 힘들 때, 지치고 힘든 날)
수준에 맞는 적당한 길이의 동영상을 보자. 미드나 영어권 애니메이션(디즈니 만화영화 혹은 We Bare Bears같은 시리즈물) 또는 예능을 찾아서 보자. 자막 없이 귀기울여 들어보자. 일부는 들리고 일부는 화면으로 짐작해서 눈치껏 알아듣게 된다. 적당히 알아들어도 재미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이정도만 해도 영어 '발음'에 익숙해진다. 여기까지가 차선책이다. (여력이 되면 다음엔 등장인물이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상상하면서 한글 자막으로 보자. 정답이 궁금한 지경에 이르거든 영어 자막으로 한 번 더 보자.)
산책하거나 장소 이동 시 아무 생각 없이 영어를 계속 듣자. BBC 라디오도 좋고, 전에 봤던 미드도 좋고(켜고 오디오만 들어보자.), 전에 풀었던 토익 듣기 파일도 좋다. 아무 생각없이 귀에 일단 밀어 넣는 것도 영어에 익숙해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3. 쓰기 (표현, 문법, 글쓰기)
일반적인 방법
주제를 정해서 영어로 에세이를 쓰고 첨삭받는 것이 가장 좋겠다. 그러나 유학생 또는 토플이나 아이엘츠를 준비하는 사람 말고는 영어 쓰기를 이렇게까지 연습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시험준비가 아니더라도 아무 주제나 정해서 영어로 글을 쓰고 첨삭받아보면 문법 뿐 아니라 '글'과 '언어'를 배운다.
차선책 (집중하기 힘들 때, 지치고 힘든 날)
공부하기 싫고 짜증나고 지치면 일기장 또는 SNS에 불평불만을 적어보자. 단, 되든 안 되든 영어로 해본다. 단 두 줄도 좋다. 문장을 못 만들겠거든 베껴오자. 궁금한 표현 한마디 정도야 구글에서 찾는데 5분도 안 걸린다. 너무 재미있게 놀고 와서 공부가 안 되면 그 내용을 영어로 적어보자. 여기까지가 차선책이다. (익숙해지고 재미를 느끼면 문장에서 문단으로, 긴 글을 적어보자. 쓰면서 고민되었던 부분은 문법책을 찾아보자. 다양한 표현을 쓰고 싶을 때는 나와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 영어 블로그 포스트를 검색해서 읽어보고 표현을 베껴오자. 하지만 Ctrl+C/V말고 타자를 치든 필사를 해보든 베껴서라도 직접 써 본다. 그렇게 쓴 글에 욕심이 생겨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지면 유료 첨삭으로 넘어가면 된다.)
4. 말하기 (스피킹, 발음)
일반적인 방법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하거나 화상 영어, 전화 영어를 신청하고는 한다. 목적과 수준에 맞는 서비스를 찾아서 다양하게 이용해보면 된다. 혼자 2분 말하기를 하고 녹음하고 피드백해봐도 된다.
참고:
*혼자서 영어 발음 검증하고 교정하는 여러가지 방법들
*혼자서 영어 발음 검증하고 교정하는 여러가지 방법들 2
참고:
*혼자서 영어 발음 검증하고 교정하는 여러가지 방법들
*혼자서 영어 발음 검증하고 교정하는 여러가지 방법들 2
차선책 (집중하기 힘들 때, 지치고 힘든 날)
말하기, 그것도 영어로 하려면 능동적인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데 심신이 피로하면 사람이 수동적으로 변한다. 이럴 때는 말할 내용을 쥐어짜내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내가 예전에 써놓은 글을 가져다가 소리내어 읽어본다. 쉬운 영어책이 있으면 그것도 소리내어 읽어본다. 기왕이면 녹음해보고 여력이 될 때 들어본다. (녹음 과정 중에 이미 내가 어느 부분 발음이 어색한지 알게 되고, 때로는 어색함을 못견디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올바른 발음을 찾아보기도 한다.)
영어를 쓰는 친목 모임에 가본다. 굳이 영어를 배우러 가겠다는 생각보다는 친구들과 논다는 느낌으로 갈만한 영어 모임을 찾아본다. 나같은 경우는 '토스트마스터즈'가 그랬다.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하며 부수적으로 영어를 쓰게되면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지고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만 남는다. 오히려 힐링을 위해 갈 수도 있다. (여력이 된다면 집에 돌아와서 내가 잘못 말한, 어려워한 표현, 문법을 적어두고 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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